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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 교수)
3월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트럼프 집권 2기 출범과 맞물려 진행돼 특별히 주목받았다. 앞으로 4년간 트럼프 정권과 할리우드가 어떤 관계일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반(反)트럼프 성향 발언이 나왔지만, 이번엔 트럼프를 대놓고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상 흐름에서 트럼프 정부의 노선과 상반되는 메시지가 간접적으로 나타났다.
아카데미 트로피 ⓒAP연합
과거 혐오 발언에 발목 잡힌 여 에너지생활의지혜 우주연상 후보
《에밀리아 페레즈》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무려 13개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르면서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주요 부문상은 모두 놓친 가운데 여우조연상과 주제가상 단 두 부문 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상식 직전에 여성 주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갑자기 할리우드의 냉대를 받으면서다.
카드 가스콘은 트랜스젠더 배우로, 극 중에서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 수장 역할로 나왔다. 최근 할리우드가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성소수자이며 마약 조직의 남성성을 전복하는 역할로 나온 가스콘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스콘은 이미 칸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는 바 있다. 칸에서 트랜스젠더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말자싸롱 받은 건 사상 최초여서 큰 주목을 받았다. 설사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시상식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참석자로 조명을 받을 거라는 게 확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스콘의 과거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2021년 배우 윤여정과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 조연상 등을 받은 가스콘이 자신의 SNS에 "내가 아프리카-한국 축제나 흑인 인권 채무조회 시위, 3·8 여성대회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동양인, 흑인, 여성 폄하 등 다양성의 가치에 위배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2020년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나는 사기꾼 마약중독자인 조지 플로이드를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는 글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또한 흑인 폄하로 다양성의 가치에 반한다.
여자직장인패션이 때문에 시상식 직전에 가스콘이 참석하기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겨우 시상식에 참석은 했지만 차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사회자가 대놓고 가스콘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여우주연상도 불발됐다. 이 SNS 두 문장 때문에 가스콘은 거의 확실해 보였던 아카데미 주연상을 놓치고 현장에서 조롱받는 처지가 됐다. 가스콘 한 명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자체가 주요 부문 유력 수상 후보에서 지워졌다.
이 사건은 아카데미와 할리우드가 얼마나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선과 상반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할리우드는 다양성을 중시한다. 할리우드의 입장이 《에밀리아 페레즈》와 가스콘에 대한 엄격한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조이 살다나는 "스페인어로 노래하고 연기해 상을 받은 내 모습을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며 자신이 도미니카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자신이 도미니카 출신의 마지막 아카데미 수상자가 아닐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마치 앞으로도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와 활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에밀리아 페레즈》 대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상을 휩쓴 《아노라》는 우즈베키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여성 스트리퍼의 이야기다. 이민·여성·성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꾸준히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해왔던 점 역시 시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이 러시아 재벌 2세와 결혼하려 하자 러시아 재벌이 방해해 대립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시상식 사회자는 이를 두고 "미국인들이 강한 러시아인에게 맞서는 장면을 보게 돼 신난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면박을 주면서 러시아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인 데 대한 반발로 읽힌다. 편집상 시상자는 무대에 올라 "슬라바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DP연합
트럼프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은 사라져
남우주연상도 이민자 역할에 돌아갔다. 《브루탈리스트》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역할을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다. 그는 홀로코스트 관련 유대인 역할로 벌써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할리우드를 좌우하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루면 일단 가산점을 주는 느낌이다.
이변도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한 《노 아더 랜드》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것이다. 유대인의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에서 이례적인 시상이다. 이는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배치된다. 이 영화의 공동 감독은 "우리는 가자지구의 잔인한 파괴를 봤고 이는 반드시 끝나야 한다"며 "미국의 외교정책이 평화의 길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블랙핑크 리사의 출연이었다. K팝 가수의 사상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공연이다. 그런데 리사가 출연한 건 '007 시리즈'의 50주년 특별 공연이었다. 007 시리즈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첩보물로 국민 브랜드 성격을 띤다. 당연히 영미권의 대표 가수나 007 시리즈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공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모두 3명의 공연자를 구성하면서 미국, 영국 가수와 함께 태국인 K팝 스타인 리사를 포함시켰다. 리사와 K팝의 입지가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아카데미 측이 얼마나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지도 드러낸 사건이다.
결국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반트럼프 흐름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집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노골적인 조롱 등은 피하면서 수위를 낮춘 느낌이다. 과연 내년 아카데미도 올해와 같은 방향일지, 아니면 아예 방향이 바뀔지 관심이 집중된다.
3월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트럼프 집권 2기 출범과 맞물려 진행돼 특별히 주목받았다. 앞으로 4년간 트럼프 정권과 할리우드가 어떤 관계일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반(反)트럼프 성향 발언이 나왔지만, 이번엔 트럼프를 대놓고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상 흐름에서 트럼프 정부의 노선과 상반되는 메시지가 간접적으로 나타났다.
아카데미 트로피 ⓒAP연합
과거 혐오 발언에 발목 잡힌 여 에너지생활의지혜 우주연상 후보
《에밀리아 페레즈》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무려 13개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르면서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주요 부문상은 모두 놓친 가운데 여우조연상과 주제가상 단 두 부문 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상식 직전에 여성 주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갑자기 할리우드의 냉대를 받으면서다.
카드 가스콘은 트랜스젠더 배우로, 극 중에서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 수장 역할로 나왔다. 최근 할리우드가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성소수자이며 마약 조직의 남성성을 전복하는 역할로 나온 가스콘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스콘은 이미 칸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는 바 있다. 칸에서 트랜스젠더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말자싸롱 받은 건 사상 최초여서 큰 주목을 받았다. 설사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시상식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참석자로 조명을 받을 거라는 게 확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스콘의 과거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2021년 배우 윤여정과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 조연상 등을 받은 가스콘이 자신의 SNS에 "내가 아프리카-한국 축제나 흑인 인권 채무조회 시위, 3·8 여성대회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동양인, 흑인, 여성 폄하 등 다양성의 가치에 위배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2020년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나는 사기꾼 마약중독자인 조지 플로이드를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는 글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또한 흑인 폄하로 다양성의 가치에 반한다.
여자직장인패션이 때문에 시상식 직전에 가스콘이 참석하기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겨우 시상식에 참석은 했지만 차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사회자가 대놓고 가스콘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여우주연상도 불발됐다. 이 SNS 두 문장 때문에 가스콘은 거의 확실해 보였던 아카데미 주연상을 놓치고 현장에서 조롱받는 처지가 됐다. 가스콘 한 명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자체가 주요 부문 유력 수상 후보에서 지워졌다.
이 사건은 아카데미와 할리우드가 얼마나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선과 상반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할리우드는 다양성을 중시한다. 할리우드의 입장이 《에밀리아 페레즈》와 가스콘에 대한 엄격한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조이 살다나는 "스페인어로 노래하고 연기해 상을 받은 내 모습을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며 자신이 도미니카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자신이 도미니카 출신의 마지막 아카데미 수상자가 아닐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마치 앞으로도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와 활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에밀리아 페레즈》 대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상을 휩쓴 《아노라》는 우즈베키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여성 스트리퍼의 이야기다. 이민·여성·성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꾸준히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해왔던 점 역시 시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이 러시아 재벌 2세와 결혼하려 하자 러시아 재벌이 방해해 대립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시상식 사회자는 이를 두고 "미국인들이 강한 러시아인에게 맞서는 장면을 보게 돼 신난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면박을 주면서 러시아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인 데 대한 반발로 읽힌다. 편집상 시상자는 무대에 올라 "슬라바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DP연합
트럼프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은 사라져
남우주연상도 이민자 역할에 돌아갔다. 《브루탈리스트》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역할을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다. 그는 홀로코스트 관련 유대인 역할로 벌써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할리우드를 좌우하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루면 일단 가산점을 주는 느낌이다.
이변도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한 《노 아더 랜드》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것이다. 유대인의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에서 이례적인 시상이다. 이는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배치된다. 이 영화의 공동 감독은 "우리는 가자지구의 잔인한 파괴를 봤고 이는 반드시 끝나야 한다"며 "미국의 외교정책이 평화의 길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블랙핑크 리사의 출연이었다. K팝 가수의 사상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공연이다. 그런데 리사가 출연한 건 '007 시리즈'의 50주년 특별 공연이었다. 007 시리즈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첩보물로 국민 브랜드 성격을 띤다. 당연히 영미권의 대표 가수나 007 시리즈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공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모두 3명의 공연자를 구성하면서 미국, 영국 가수와 함께 태국인 K팝 스타인 리사를 포함시켰다. 리사와 K팝의 입지가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아카데미 측이 얼마나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지도 드러낸 사건이다.
결국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반트럼프 흐름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집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노골적인 조롱 등은 피하면서 수위를 낮춘 느낌이다. 과연 내년 아카데미도 올해와 같은 방향일지, 아니면 아예 방향이 바뀔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