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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핀을 비가 그 내밀며 셋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청년 백남준이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 ‘손과 얼굴’(1961)을 볼 수 있다. 이영경 기자


백남준(1932~2006)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우뚝 솟은 산과 같다고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중앙에 18.5m 높이의 ‘다다익선’(1988)이 우뚝 솟아있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을 10m 너비의 ‘서울 랩소디’(2001)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세계(서구) 미술과 한국 미술이 만나는 거의 모든 교차점에서 백남준의 이름이 언급된다.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약했던 백남준은 돌이켜보면 원조 한류이자 ‘K아트’의 선구자였다. 누구나 백남준의 아파트 매매시 필요서류 이름과 구식 브라운관 TV를 쌓아 올린 작품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백남준을 잘 안다’는 뜻일까?
‘한국이 낳은 세계적 미술가’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등 화려한 수식어를 얻기까지 백남준이 밟아온 예술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부산 을숙도에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적금이자계산 ’에서다. 실험적이고 혁신적 예술운동인 플럭서스(Fluxus)의 일원으로 선보인 1960년대 초기 작품부터 백남준에게 유명세를 안긴 ‘TV 부처’, ‘케이지의 숲’ ‘108번뇌’ 등 대규모 작품, 레이저를 이용한 작품까지 총 168점을 전시한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 사후에 미술관급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며 “지금 시와그림4집 10대·20대가 백남준의 작품을 잘 모른다는 것에 아쉬움을 갖고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기획으로, 백남준아트센터는 소장품 141점(작품 88점, 자료 38점, 영상 15점)을 부산으로 가져왔다. 에코랜드, 울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 국내에 흩어진 백남준의 작품을 한곳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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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의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1992~1994).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 전경. ‘ 보험설계사급여압류 달은 가장 오래된 TV’와 ‘TV 부처’가 함께 전시돼 명상적 공간을 연출한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수백, 수천 개의 TV를 쌓아 올리기 전 백남준은 피아노를 부수고, 바이올린을 길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던 ‘문화 테러리스트’ 같은 예술가였다. 예술의 권위를 해체하고, 경계를 허물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고자 했던 플럭서스의 흐름 속에 백남준은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 1962)’에서 백남준은 머리카락을 붓처럼 잉크에 찍어 종이에 선을 그렸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라 몬테의 ‘컴포지션 1961’의 “직선을 긋고 따라가라”는 지시문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에선 플럭서스 시절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사진과 자료로 만날 수 있다.
1963년 독일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비디오 아트를 미술사에 처음 소개한 전시로 평가받는다. 백남준은 경향신문 지면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을 비판해 1959년 폐간됐다가 4·19 직후 복간된 경향신문에 대해 들은 백남준이 경향신문 복간호 등을 구해 첫 개인전 포스터를 만든 것이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에 붉은 잉크로 인쇄된 포스터를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 백남준 63년 獨데뷔전시회 본지를 포스터로
     https://www.khan.co.kr/article/200602060649421





경향신문 지면을 이용한 백남준의 첫 개인전 포스터. 1963년 독일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의 전시 일정과 함께 상단에 큰 글씨로 ‘남준 백’이라고 써 있다. 이영경 기자





자석을 이용해 관람객이 TV 화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석 티비’를 체험해볼 수 있다. 이영경 기자


TV가 등장해 라디오를 대체하기 시작하자 백남준은 TV 앞에 앉는 대신, TV의 뒤를 열어보았다. 송출된 영상만 볼 수 있는 일방적 수신기였던 TV는 백남준의 손에 의해 예술가와 관객이 마음대로 화면을 바꿀 수 있는 ‘전자 캔버스’가 되었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자석 TV’는 자석을 갖다 대면 화면이 변하는 TV의 원리를 활용한 작품이다. TV 내부 회로를 조작해 만든 ‘왕관 TV’, 비디오를 피아노 연주하듯 누구나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비디오 신디사이저’ 등 비디오 아트의 태동기를 볼 수 있다.
백남준의 대표적인 TV 조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전시의 매력이다. 국내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도 있다. ‘라이트 형제’(1995)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이 밖에도 할머니·할아버지, 어머니·아버지, 손녀·손자까지 3대에 걸친 로봇 가족을 만든 ‘로봇가족’ 시리즈 가운데 할머니와 할아버지(에코랜드 소장)도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왔다.



국내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던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백남준의 ‘라이트 형제’(1995). 이영경 기자





백남준의 ‘걸리버’(2001) 뒤로 ‘케이지의 숲’(1992~1994)가 전시돼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총 길이가 4m가 넘는 거대한 로봇 ‘걸리버’(2001)와 곧게 뻗은 나무에 모니터 23개를 설치한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1994)가 함께 전시된 공간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케이지의 숲’이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오키나와 민요와 함께 나무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모니터를 통해 자연과 기술이 조화된 신비로운 공간을 수직적으로 연출한다면, 맞은편 바닥에 드러누운 ‘걸리버’는 백남준이 제작한 소인국 로봇과 함께 백남준이 1964년 최초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로봇 K-456’의 영상이 보이며 유머러스한 장면을 수평적으로 연출한다.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선보인 ‘108번뇌’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108개의 모니터를 통해 ‘서태지와 아이들’ 등 한국의 대중문화와 역사적 사건, 근대사의 주요 인물 등이 보여지며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함축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백남준이 1997년부터 3년에 걸쳐 만든 레이저 작품 ‘삼원소’다. 백남준은 레이저를 ‘포스트 비디오’라고 칭하며 관심을 가졌다.
전시 끝에선 백남준이라는 우뚝 솟은 산의 원경이 아닌 구체적 근경이 어느 정도 보인다. 독일의 이방인이었지만 누구보다 패기 넘쳤던 젊은 시절의 백남준, 한국 현대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거장 백남준, 기술을 통한 소통과 연결을 꿈꾸며 미래를 내다봤던 백남준,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을 볼 수 있는 전시다. 내년 3월16일까지



백남준 ‘108번뇌’(1998), 20인치와 29인치 CRT 모니터 108대, 컬러, 유성, 50분.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소장.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백남준의 ‘삼원소’(1999).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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