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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전설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2019년 방일 시 도쿄 인근 타마(多磨)묘원의 리하르트 조르게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주일 러시아 대사들은 부임 후 조르게 묘소를 참배하는 게 관례다. 조르게는 사후 20년 만인 1964년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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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는 현대 정보사의 한 획을 그은 소련의 레전드 스파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함락 직전의 모스크바 방어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소련을 구했고, 히틀러의 패망을 촉진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특히 국가위기 시 사사로움을 버리고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는 정보인의 카드론일시상환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국가를 초월해 존경받고 있다. 1944년 그를 일본 법정에 세운 미츠사다 요시카와 검사는 “내 인생에 그만큼 훌륭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극찬했고, 미국의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2차 대전 당시 가장 눈부신 활동을 한 스파이라고 회고했다. 영화 007시리즈의 원작자 영국의 이언 플레밍은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sbi 위대한 스파이라고 평가했다.

80년이 지난 오늘 그를 떠올린 것은 레전드 스파이의 영웅적 서사 때문만은 아니다. 잘 훈련된 정보요원 한 명이 국가위기 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또한 조르게처럼 조국에 대한 서운함이 있어도 모든 비밀을 끝까지 안고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정 집담보대출이자 보인의 숙명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힐끗힐끗 보이는 정보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그런 의문이 들었다. 조르게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답이 조금 보인다.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위대한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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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조르게의 모습. [중앙포토]







조르게의 스파이 여정은 1929년 소련 군정보총국(GRU)에 입사하면서 본격화됐다. GRU는 수려한 외모와 지성, 대담성과 모험심, 출중한 외국어 능력 등 완벽한 스파이 조건을 갖춘 그를 코민테른 시절부터 눈여겨보다 전격 스카우트했다.

1년간 혹독한 훈련을 거쳐 당시 열강의 각축장인 중국으로 밀파했다. 주 임무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동향 파악이었다. 그러나 조르게의 눈에는 나치독일의 일본 접근 움직임이 더 크게 보였다. 만약 나치독일이 대일관계를 강화해 동·서로 소련을 협공하면 소련은 국가생존의 위기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중요한 정보가 정작 독일과 일본 거점에서는 올라오지 않자, GRU는 아예 조르게를 중국에서 빼내 일본으로 보냈다. 당시 소련의 최대 안보위협인 일본의 동향과, 대일관계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나치독일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GRU는 조르게의 일본 임무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시켰다. 먼저 그를 독일로 보내 완벽한 독일인으로 위장시켰다. 부모님 따라 독일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조르게는 독일인으로의 변신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히틀러 정부의 실세였던 괴벨스 선전부 장관에게 접근해 그의 도움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차이퉁지의 일본 특파원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신분 위장에 큰 도움이 됐다.
1933년 특파원 자격으로 일본에 입성한 조르게는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일본의 역사·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 일본 친화적 행보를 통해 금방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오자키 호쓰미(尾崎秀實)와 격의 없는 관계를 구축한 것은 일본 내 정보망 구축에 큰 디딤돌이 됐다. 오자키는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총리의 절친이자 최측근으로 그를 통하면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주일 독일대사관에 대한 정보망도 구축했다. 나치독일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국을 대리하는 대사관 내 협조망 확보는 필수였다. 그런데 이 일도 의외로 쉬웠다. 독일대사관이 일본 문제에 해박한 조르게를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헤르베르트 폰 디르크센 대사와 오이겐 오트 무관(후일 대사로 승진)은 일본과 극동문제 논의를 위해 거의 매일 조르게를 찾았다. 이로써 독일대사관에 대한 정보접근로도 확보했다.









일본 외무성 정보국이 발행한 조르게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자이퉁지 특파원 신분증. 신문기자로 위장해서 활동했다. [중앙포토]







이런 준비를 거쳐 던져 놓은 정보망에 대어급 정보들이 걸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의 운명과 세계사에 영향을 미칠 특급정보들도 걸려들었다. 1941년 5월 30일 조르게는 ‘나치독일이 6월 말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외의 극비정보를 입수해 긴급 타전했다. 그런데 본국 반응이 의외였다.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는데 무슨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냐며 오히려 조르게를 질책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6월 21일 또다시 나치독일의 소련침공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타전했다. 본국은 조르게의 정보를 또 무시했다.

조르게의 정보를 무시한 대가는 컸다. 1941년 6월 22일 나치독일은 소련을 전격 공격해 거침없이 진격했다. 1941년 10월 모스크바 함락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더욱 암울한 것은 나치독일이 일본에 소련을 공격해주도록 외교교섭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 교섭이 성사될 경우 소련은 동서 양쪽에서 협공을 받아 절체절명의 국가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때 조르게는 또 한 번 소련을 구할 극비정보를 입수했다. 일본 어전회의 결정내용으로, 일본은 소련침공 대신 미국과 인도차이나를 공격하기로 했다는 특급정보였다. 이를 종합해 9월 14일 모스크바에 “일본은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긴급 타전했다. 조르게 정보가 늘 정확했음을 경험한 모스크바는 이번에는 조르게의 정보를 믿었다. ‘일본은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르게의 정보에 따라 소련은 일본의 공격에 대비해 배치한 극동군사력을 즉시 모스크바로 이동시켜 풍전등화의 모스크바를 방어했다. 이후 스탈린은 역전에 성공했고 히틀러는 파멸로 이어졌다. 2차 대전도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조르게의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르게가 높이 평가받은 가장 큰 이유다.
이즈음 조르게의 스파이 여정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41년 10월 일본 당국이 자신을 뒤쫓고 있음을 간파한 조르게는 피신 대신 일본인 연인 이시이 하나코(石井花子)에게 발길을 돌렸다.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예감대로 10월 18일 하나코의 집에서 체포됐다.









정보전쟁







조르게를 체포한 일본은 3년 조사 끝에 그의 정체를 알아내고 깜짝 놀랐다. 독일 특파원 신분이어서 독일 정보기관의 협조자 정도로만 알았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소련 스파이여서다. 심지어 일본 조야에서는 조르게가 ‘일본과 극동문제에 해박한 독일기자’로 각인돼 있어 스파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조르게가 체포되었을 때 독일 오트 대사가 구명운동까지 했을 정도다. 그가 오늘날까지 완전무결한 스파이(Impeccable Spy) 또는 스파이의 끝판왕(The Spy to End Spies)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정보인의 숙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자세도 늘 회자된다. 출중한 능력과 조국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처형 직전까지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련 스파이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 복잡한 외교문제로 비화돼 조국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며 혹독한 고문에도 끝까지 부인했다.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본국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스파이의 정석을 지켰다. 결국 1944년 11월 7일 스가모 감옥에서 처형됐다.
체포 직전 연인 찾아가 마지막 인사 이처럼 조르게는 10여년간의 길지 않는 스파이활동을 통해 현대사는 물론 정보사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체포의 두려움 속에서도 연인에 대한 마지막 작별 예의를 갖추는 등 인문학적 이야기도 풍성하게 남겼다.
우리에게도 되새겨볼 만 한 교훈도 남겼다. 무엇보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국가만을 위해 헌신하는 정보인의 견인수명 교훈을 남겼다. 지금 우리는 좀 비약하면 무엇부터 먼저 해결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포리아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럴 때 견위수명의 정보인 자세는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조르게가 보여주었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보여준 정보인들의 공개 행보는 이런 견위수명 노력을 저해시킬 수 있어 아쉽다. 이 같은 공개 행보는 자칫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잃어버리는 견리망의(見利忘義)로 오해될 수 있고, 이는 정보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불신들이 쌓이면 정보활동이 위축되고 결국 국가의 정보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보의 비밀유지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비밀유지는 정보의 시작인 동시에 존재 이유다. 그래서 정보인들은 가급적 공개행보를 자제한다. 국제표준이다. 다만, 서방 선진국들은 정보논란이 불가피하게 불거질 경우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 비공개 정보법정 등을 통해 해결한다. 비밀유지를 위해서다. 이제 우리도 정보법정 설립 등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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