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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인 11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북쪽에 붙어있는 라파예트 광장 일대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차를 타고 도심 500m를 이동하는 데에만 20분 넘게 소요되며 곳곳에서 운전자들의 짜증 섞인 경적이 울렸다. 이는 경찰의 대대적인 통제 아래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쪼그려 앉아 아스팔트를 뚫고 석재 볼라드를 제거하는 공사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 불렸던 광장을 ‘리버티 플라자(Liberty Plaza·자유의 부동산대출 광장)’로 바꾸는 공사는 지난 10일부터 시작됐다. 완공까지 약 6~8주 소요된다.
백악관에서 약 400m 떨어진 16번가의 2개 블럭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만 해도 흑인 희생자들을 기리고 인종 차별 철폐 구호를 외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2020년 6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에 목이 눌려 사망하자 국민은행 학자금대출 전국적으로 집회·시위가 들끓었는데, 수도 워싱턴 DC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파예트 광장과 맞닿아 있는 이 2개 블럭이 반(反)인종차별 캠페인의 중심지이자 해방구 역할을 했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민주당 출신 흑인 여성 시장 뮤리얼 바우저는 50피트(약 15m) 길이 도로 한 쪽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대형 문구를 노란색 글씨로 새겨넣었다. 또 400 사금융보증인대출 만 달러(약 58억원)를 들여 일대를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지정했고, 이름을 ‘BLM 플라자’라 명명했다.
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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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AFP 연합뉴스
이는 당시 백악관 안방을 차지하고 재밌는생활의지혜 있던 트럼프의 심기를 대단히 거스르는 것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차별 논란이 고조돼 그해 11월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들이 결집했고,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 당일 BLM 플라자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축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 DC와 뉴욕시 등 진보 성향 지도자가 이끄는 도시들이 잇따라 거리에 ‘BLM’ 문구를 새기기로 하자 트럼프는 “증오의 상징에 돈을 쓰는 대신 범죄와 싸우는 데 돈을 쓰길 바란다”고 했다. 또 프로농구(NBA) 등에서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뜻으로 경기 전 무릎을 꿇은 세레머니에 대해서도 “부끄럽고 수준 떨어진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지난 대선 때 10명 중 9명이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투표한 진보 아성(牙城) 워싱턴 DC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백악관 앞 도로 바닥에 새겨져있는 ‘BLM’ 세 단어가 첫 번째 표적이 된 것이다.
공사는 지난주 바우저가 “공간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일주일도 안 돼 시작한 것이다. 4년 전만 해도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만만했던 바우저가 “미국 역사상 매우 어두웠던 시기에 벽화가 도움이 됐고 이제 다시 진화할 것”이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건 정치적 보호막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선은 물론 공화당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상·하원을 싹쓸이하면서 수도 워싱턴 DC는 현재 자치권이 박탈될 위기에 처해있다. 인구가 약 70만명에 불과한 워싱턴 DC는 다른 50개 주(州)와 달리 상·하원에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이 없고 시정부·시의회도 의회 검토·승인 없이 법안과 예산을 통과시킬 수 없는, 연방 의회가 직할(直轄)하는 ‘연방 지역’이다. 트럼프가 “더럽고 추잡한 도시 지배권을 뺏어오겠다”며 자치권 박탈을 시사한 가운데, 이미 의회에선 공화당 의원들 주도로 예산 삭감 등 목을 죄는 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한 흑인 활동가가 여기에 항의하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날 현장에선 일부 흑인 활동가들이 ‘트럼프는 BLM을 결코 지울 수 없다’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공사에 항의하고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왔다는 알리샤씨는 “앞으로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에서 흑인들이 어떤 대접과 차별을 받을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다”며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에 우리는 없다”고 했다. 공사 시작 하루 전인 9일엔 광장을 기리는 행사도 열렸는데 회원들은 “글자는 지울 수 있어도 우리의 역사는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5년 전 문구 설치 작업에 참여했던 예술가인 키오나 존스는 언론에 “바우저 시장의 결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이걸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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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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